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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데 필요한 것

세상을 바꿀 권리

벌써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 시간상으로는 이제 겨우 여덟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시점이 너무 늦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실 이 글은 대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대선, 그 이후를 생각해보는 글이다. 지난 5년간 이 나라는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다. 누군가는 배를 불렸겠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았고, 누군가는 삶이 피폐해져 복구하기가 어려운 지경으로 망가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미 세상을 등지고 명을 달리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소리도 있지만 지난 5년간 스러진 안타까운 목숨중에는 분명 “상식적인 수준의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국가 시스템”이라면 응당 보호 받을 수 있었던 소중한 목숨들도 분명 있었다는 점은, 그리고 그 수가 적지 않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내일 동이 터 오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슴에 품고 권리를 행사하러 갈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여전히 세상을 바꾸는 건 한 표가 아니라며 잠을 청할 것이고, 어떤 누군가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른채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일 있을 그 열 두시간은 여태 이 나라의 어떤 열 두 시간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초조하고 흥미진진한 그런 시간이 되지 않을까.
뜨거운 마음으로 성원을 보내는 후보에게 투표를 하는 당신. 부디 투표를 끝내고 투표소를 빠져나올 때는 밖에 불고 있을 그 차가운 바람보다도 더 매서운 마음으로 무장해주었으면 한다. 내가 지지한 저 후보가 말한 공약, 그가 그린 대한민국을 제대로 실현해 나가는지 이제부터 엄중히 감시하고 욕해야 할 시간이 찾아올테니. (물론 지지하는 후보에 따라서는 그런 걸 절대 마음먹지 말아야 할 수도 있다. 그건 뭐 각자가 알테니 알아서 판단하고 나중에 나를 원망하지는 말자.)

투표로 바뀌는 것

이번 대선, 투표로 바뀌는 것은 무엇일까? 응? 앞서 ‘세상을 바꾸는 권리’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그렇게 말했다만 대선의 결과로 바뀌는 것은 사실 아주 작은 부분이다. 그건 단지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는 것 뿐이다. 그리고 슬픈 사실은 “청와대의 주인이 바뀐다고 나라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수구 세력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그들이 국정에 그토록 무능함을 보이는 것은 실제로 무능해서가 아니다. 시민의 권리, 서민의 안전, 국가의 공익에는 그들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것 뿐이다.
국가는 그 규모로 따지자면 상당히 거대한 시스템이다. 그 구성원도 많고 지리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복잡한 원리와 규칙들이 얽히고 섥혀서 동작한다. 대한민국이라는 큰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헌법이라는 1차 규칙에 의해 돌아가고, 그 헌법이 곳곳에 적용되기 위해서 법률을 비롯한 하위 법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것들은 단지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한 규칙”일 뿐 실제로 시스템을 구동해주는 요소는 아니다. 차에도 기름을 떼야 하고, 보일러에는 가스를 넣어야 하며 심지어 컴퓨터도 전기는 넣어야지 프로그램들이 돌지 않던가.
그래서 이 국가를 구성하는 룰은 법이나, 이를 실행하는 여러 기관들이 있어서, 실제로 국가라는 시스템이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물론 그 영향력은 크지만) 국가를 이루는 하나의 기관이다. 자동차로 치자면 핸들…정도가 되겠다.
핸들을 바꾼다고 차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물론 핸들을 바꾸면 어느 방향으로 쉽게 방향을 틀 수 있게 되거나 하는 건 있는데, 차가 유턴을 하려고 해도 적어도 3개 차선은 써야 방향을 돌릴 수 있듯이 단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하루 아침에 나라가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5년… 그 5년으로는 나라를 바꾸기가 참 어렵다. (물론 서울시의 예를 들자면… 서울시 정도의 시스템은 5년이면 시장님의 역량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 거의 분명해졌다.) 어떤 국정 운영의 이념과 철학을 완전히 공유하는 차기 대통령, 차차기 대통령… 그리고 그다음. 거의 4번의 안정적인 정권 이양이 이루어져야 가능할 것이다. 그럼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떤가?
관료조직의 부패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나 권리가 심하게 남용되고 있다. 비단 경찰, 검찰이나 사법 기관 뿐만 아니라… 아 국회의원을 빼먹었구나 그외 대한민국의 여러 관공부서의 관료 조직은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알고, 세금 알기를 그냥 동네 웅덩이에 차있는 물로 여기고 있다.
그런 정황들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모피아’라는 말은 왜 나왔나? 검찰을 그만두는 검사가 자신이 수사하던 기업의 법률 고문이나 다른 임원으로 가는 거 이번 정권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였던 일이다. 대학 당국을 통제해야하는 교과부 고위 관리자는 나중에 모 대학의 이사나 고문으로 간다. 식약청의 관리는 제약회사의 고문으로… 뭐 판사 관두고 변호사 개업하면 무조건 첫 재판은 걍 준다는 전관예우는 그냥 애교이자, 극적인 장치로 많이 쓰여서 워낙 유명한 것일 뿐이다. 이런 ‘전관예우’ 때문에 주인공이 부당한 일을 당하고 억울함을 겪는 일을 보고 분노한 시청자인 적이 있다면 이런 썩어빠질 관행이 한국의 관료 사회를 가득메우고 있는 똥냄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떤 성향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다. 이들 관료들에게 대통령 선거는 ‘그냥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는 것’일 뿐이다. 특히 수구 세력의 후보가 정치인이 된다면 자신의 앞으로의 5년이 좀 수월해질 뿐이다. (국민 다수를 위한 일은 별로 안 벌일게 분명하니까.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가장 피곤한 사람은 누굴까를 생각해보자)

그래서 필요한 것

내가 지지하는 그 후보는 검찰 조직을 개혁할 것이라고 했다. 좋다. 옳은말이다. 그런데 검찰만 개혁한다고 되나,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역시 밑바닥을 기고 있다. 선관위의 감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는지도 이번 정권들어서 거의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줄줄 새어 나간 돈은 사대강에 쏟아붓고 나로호에 태워먹은 그런 돈들만 있는게 아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거의 일치하는 국정 운영 철학이나 정책을 가진 차기 대통령… 차차기 대통령…”이 계속해서 약 4번 정도에 걸쳐 그러니까 20년 정도가 걸려야 하지 않을까라고 보이는데 그마저도 사실 “그렇게 된다한들”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결국 보다 빠르고 확실한 방법으로 관료 체계의 부패와 비효율화[1. 관료조직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크기만 커지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심지어 수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를 막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이냐면, ‘시민의 감시’하에 이들 관료 조직이 견제를 받으며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법적 기관들은 자기들끼리는 견제하는데 시민의 견제는 받지 않는다. 그런데 “기업이나 특수 이익 집단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는” 관료들이 그들과 떡고물을 나눠먹고 국정 운영이 개판으로 돌아가는 판국에 이들 공무원들이 서로에게 쓴소리를 한다? 이건 뭐 공산주의보다도 더 이상적이고 감상적인, 마치 손발이 딱딱 맞아떨어지며 협동하는 초딩들 만화 주인공들 같은 이야기 아닌가?
결국 관료 조직 자체의 폐쇄성과, 몰방향성은 그 외부의 ‘누구로부터도 억압받지 않으며 자정 가능한 기관’에 의해 감시되고 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관은 다름 아닌 시민이다. 이런게 제도화된다면 공무원들을 정말 X나 피곤해질 거야. 안그래? 그런데 공무원이 피곤해지면 시민은 편해진다. 그리고 이 말은 지금 서울 시민이라면 어느 정도 체감해 보셨을 것도 같다.
또한 이런 외부의 견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료 조직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가장 건전한 형태의 자구책은 “조직 내에서의 자정”이다. 적당히 꼬리 자르기 식으로 한 두 사람이 총대메야 한다거나 그런 거 없이, 잘못한 사람이 책임을 지는 그런 문화. (사실 지금은 아랫사람 모두가 잘못해도 위에서 한 두 명이 옷 벗고 말아서 나쁜 관행이 계속 이어져가거나 하는 문제도 많지 않나?) 결국 내부 고발을 활성화 하자는 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자는 리얼썅놈의 대접을 받고 있지만, 이런 내부고발자들이 없다면 폐쇄적인 관료 시스템의 잘못은 외부로 거의 알려지지도 못한다.
아무튼 나는 이번 대선의 당선자가, 이런 관료 조직을 시민의 편으로 돌려 놓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주었으면 한다. 이건 당장 내년에 효과를 보거나 할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서 이 나라가 돌아가는 시스템 전반을 국민에게 돌려준 거대한 업적으로 완성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시작해 주었으면

누가 되든, 대통령 당선자가 되는 분에게 꼭 말하고 싶다.
세상,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라고 국민들이 당신에게 한 표, 한 표를 주었겠지만, 그렇게 당신에게 마음 준 시민들, 그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어 나가세요. 그리고 그 쉽지 않은 여정에 기꺼이 시민들이 한 걸음 한 걸음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처음 시작하는 길에 박힌 크고 뾰족한 돌 몇 개만 잘 치워주면 당신이 그렸던 대한민국이 어쩌면 보다 빨리, 그리고 더 생동감 있고 단단한 모습으로 수많은 이들의 눈을 거쳐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