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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4 :: 너무 급하게 달려가는 IPTV

TV에서 웹 검색을 할 수 있다는 메가TV의 네이버 서비스에 대한 기사를 보고는 문득 몇 가지 생각이 들어서 키보드를 두드려봅니다. 아, 물론 새로 사 놓은 키보드를 너무 방치한 것 같아서 쓰는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요.
IPTV, 아니 디지털 케이블 방송을 포함해서 디지털 방송이라고 하죠. 디지털 방송은 이제 첫 걸음을 떼고 있고, 조만간 사용자층이 대폭 확대 되면서 진정 방송과 통신이 결합되는 시대가 오기는 올 것입니다. 여기서 ‘방송과 통신이 결합되는 시대’라는 표현은 무척이나 거창합니다. 좀 지나치게 거창하지요. 물론 분명히 ‘방송과 통신이 결합되는 시대’라는 이름에 걸맞는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올 겁니다. 그리고 온갖 기술들의 발달로 인해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에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은 단지 기술적인 면 만을 생각했을 때를 말한다는 겁니다. 다음 측에서도 IPTV 사업에 뛰어 들겠다고 포부를 밝혔고, (그 무시무시한 XBOX360을 셋탑 박스로 쓸 계획이지요.) 서울과 일부 지방 도시의 유선방송사업자들도 자신들의 고객에 대해 디지털 전환을 유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 이 분야의 분수령이 될 올 한 해가 지나고나면 디지털 방송에 가입된 사람은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2013년까지 모든 공중파 방송을 디지털 케이블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기 때문에, 디지털 방송 분야는 꽤나 각광을 받고 또 파이가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90년대 말부터 초고속 통신망의 급격한 보급을 바탕으로 국내 인터넷 시장 규모가 엄청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정도로 커진 것과 비슷한 수준의 시장 확대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게다가 ‘방송’이라는 것의 파급효과는 방송의 자체적인 특성으로 인해 ‘인터넷’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대단한 것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빤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데 말입니다. 너무 김치 국물부터 마시려는 눈치가 여기 저기에서 보여서 좀 안타깝습니다. 이미 몇몇 SO에서 서비스 중인 디지털 방송 서비스를 보면 정말이지 안구에 습기가 차는 수준이거든요. 물론 저도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고, 제가 참여중인 프로젝트의 결과물도 그리 만족스러운 수준의 퀄리티는 아닙니다만 그것은 현재 보급된 셋탑박스들의 하드웨어적인 한계치가 너무 낮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요. 또한 개인적으로는 ‘리모콘’으로 사용자와 상호작용을 해야하는 TV라는 매체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쉬운 일례로, TV상에서 ‘헥사’와 같은 단순한 게임을 딱 2분만 해보면 리모콘을 집어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단겁니다.
사실, 방송이 타 매체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지요. 예전에 KBS에서는 시청자들과 전화 연결을 통해 전화기의 버튼을 눌러서 게임을 하는 걸 중계하는 프로그램도 방영한 적이 있었거든요. 어쨌거나 지금 초창기에 시도되고 있는 많은 서비스들의 그림은 이러한 기술적인 기반이 갖춰지기 전부터 그려져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업계에 발을 딛고 있는 저조차도 가장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한들TV는 TV라는 것이죠. 물론 ‘상호작용’이라는 체험은 사용자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보다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 줄 필수 요건이라는 점에는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TV는 태생적으로 ‘일방적’인 매체라는 겁니다. 그래서 매스미디어라는 말로 신문이나 방송을 부르지 않던가요. 물론 바보 상자라는 말을 들을만큼 TV의 멍청한 ‘일방성’은 요즘과 같은 IT세상에서 좀 저평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서비스를 만들고 준비하는 입장이 아닌 그냥 ‘사용자’ (내지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조금 이야기가 틀려집니다.
요즘은 TV 없는 집이 없고, 또 그만큼 PC도 (인터넷 회선과 더불어) 아주 많이 보급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집에서 TV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즐기는 것인 반면, PC는 그렇지가 못하지요. 물론 부모님 세대들도 요즘엔 PC에 익숙하신 분들이 많고, 저희 아버님도 봄 부터는 인터넷을 좀 해보시겠다고 벼르고 계시긴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PC는 TV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PC 하드웨어 기술이 많이 발전된데다가, 그만큼의 여유가 생긴 탓인지 요즘 PC는 참으로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집니다. 사실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드넓은 인터넷의 바다를 여기 저기 들쑤시고 있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것 조차도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어렵습니다.
제가 보기에 PC가 어려운 것은 이 것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뭐 PC로 음악도 들을 수 있고,영화도 볼 수 있으며, 게임까지 할 수 있는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진짜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많은 일들을 PC는 모두 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사용자는 PC에 어느정도 익숙하며 그 수준은 컴퓨터에 전원을 넣은 후 부터 어플리케이션을 런칭하기 까지의 네비게이션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어야 한다.
  2. 사용자가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 목적지(Destination)이 명확하며, 사용자는 실제로 그것을 하고 싶어 한다.

이에 비해 TV가 엔터테인먼트 도구로써 PC보다 우월한 것은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TV를 사용함에 있어 사용하는 인터페이스는 고작 ‘전원’ 버튼과 ‘채널+’,’채널-‘ 이렇게 세 개가 전부입니다. 심지어 TV 사용자는 무엇이 보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도 TV를 ‘허전하다’는 이유로 켜기도 합니다.
디지털 방송은 TV보다 훨씬 똑똑하게, 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다만 그러기 위해서는웹 혹은 데스크톱 기반의 어플리케이션을 흉내내야 합니다. 하지만 ‘쉬운 인터페이스’라는 측면에서 TV는너무나도 답답한 대상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디지털 방송 서비스와 사용자를 갈라 놓을수 있는 장벽은 단순히 ‘리모콘’이라는 인터페이스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마 분명 디지털 방송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서 리모콘의 조작감이 불편하다고 리모콘을 집어 던지는 사람은 일반 사용자층 보다는 얼리어답터 층에서 훨씬 많을겁니다.) 이미 구현되어 있는 많은 방송 어플리케이션은 PC에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컴퓨터프로그램은 일종의 함수이지요. 어떤 인풋을 넣으면 내부적으로 뭔가 처리를 한 다음에 아웃풋을 내 놓습니다. 인풋과 아웃풋 그리고 피드백이 연결되면서 ‘상호작용’이 만들어지지요.
하지만 지금의 TV에서 디지털 TV로 전환되는 시점의 많은 사용자들은 TV에 밀어넣을 인풋이 될 만한 것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디지털TV로  뭘 할 수 있는지,뭘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지금도 아무 목적없이 TV를 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이들에게 디지털 방송 셋탑 박스를 대령해준다고 한들, 당장에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나 그런 욕구가 용솟음치게 될지도 의문입니다.
지금 많은 이들이 꿈꾸는 디지털TV (혹은 양방향TV)는 겉모양새만 TV일뿐 실은 TV와 전혀 다른 매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매체가 TV라는 구시대의 유물과는 달리 매우 똑똑하고 재주가 많아서 많은 일을 해 줄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TV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을  재빨리 새로운 플랫폼으로 데려갈 수 있도록 잘 꼬드기는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만, (스프레드 시트 시장의 후발주자였던 엑셀은 로터스사용자들을 잘 구슬려서 데려간 덕택에 결국은 승리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저 커다란 새로운 시장을 바라보는 많은 사업자들은 그러한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살짝 염려가 되는 군요. 물론 TV에서도웹 기반의 서비스를 이용할 날이 머지 않아 오겠지만은, 당장에 저라도TV에서는 네이버든(구글이든 뭐였든)간에 별로 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요.그냥 아무 생각없이 화면을 보며 ‘머리나 식히는 편이 낫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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