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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7 :: 티맥스 윈도우, 우려가 현실로.

티맥스 윈도우의 공개가 오늘 있었습니다. 3연속 대형 떡밥만 물고 늘어지는 것 같아서 좀 저어하긴 했습니다만, 기왕 물기 시작한 떡밥 끝은 봐야겠다는 생각에 키보드를 두드려봅니다. 물론 오늘 공개 행사에는 저도 공사도 다망하고 건강은 완전 망한지라 참석은 못했습니다. 다만 여러 블로그 및 트위터를 통해서 엿본 공개 행사 및 시연과 새어 나오는 말들로 그 현장 체험을 대신하고, 이전 글들에서는 다 풀어내지 못한 생각들을 조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티맥스 윈도우의 실체가 공개되었나?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려 달라던 7월 7일이 되었고, 대한민국 IT 사상 유례없는 시끌 벅적한 공개 행사가 진행된 것 같습니다. 모여든 사람이 너무많아 행사장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고 하는 군요. 애정이든 우려든 티맥스 윈도우 아니 국산 OS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티맥스 윈도우의 실체’에 대한 것입니다. 무려 OS 개론 수업과 다를 바 없는 강연이 종료된 이후 데모에 할당된 시간은 고작 7분/10분의 시연이 전부였습니다. 시간적으로도 너무나 부족했던 것으로 보이는 이 번 시연에서 공개된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블로그에서 다뤄 주셨으니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연은 지난번 스크린샷 공개 때와 마찬가지로 티맥스 윈도우라는 제품에 대한 의혹만 배가 시킨 실패한 시연이라고 밖에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제품 자체의 시연에서 보여진 문제점 뿐만 아니라 행사 전반에서 보여지는 여러 면면이 곱지 않은 시선을 불러 일으키는 꿍꿍이를 암시한다고나 할까요? 한국 IT 산업 발전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른바 저명 인사들의 초대에서 시작해서 허탈감만 잔뜩 발산한 데모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내세운 ‘위대한 도전’은 씁쓸함만 남겼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데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티맥스 윈도우의 실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동작 –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동작하는 것을 보여줬지만 화면에 줄이 생기고, 구글의 검색 페이지가 깨지는 등 문제가 보였습니다. 사실 이 시연에서 확인 가능한 것은 프로그램의 아이콘 및 제목 표시줄의 어플리케이션 이름이 Ineternet Explorer였다는 것 뿐입니다. 지금 돌아가고 있는 프로그램이 실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맞는 지 확인할 수 있는 절차에 대해서는 모두 생략해 버렸습니다.
  • ActiveX가 호환된다고 보여주는 시연은 고작 WindowsXP 시스템에서 그들의 브라우저인 ‘스카우터’를 통해서 였습니다. 구글 크롬도 윈도우 버전에서는 ‘일부’ AcitveX를 지원합니다. 결국 티맥스가 ‘티맥스 윈도우’에서 ActiveX가 동작한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실제로 눈에 보여준 것이 없습니다.
  • 티맥스 윈도우 상에서 뭐하나 구동할 때마다 ‘이 프로그램은 굉장히 복잡한 프로그램입니다’를 연발합니다. 내부 구현이 얼마나 복잡하든 간에 그건 그 프로그램을 만든 개발자들의 역량 혹은 소관일 뿐입니다. 아주 단순한 프로그램이든 아주 복잡하고 큰 프로그램이든 OS에서는 그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만 충실히 제공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뭐랄까, 레고 블럭을 쌓아 올리면서 굉장히 색이 화려하고 다양한 블럭하나를 ‘이 레고 블럭은 상당히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아무리 색이 화려해도 요철이 맞춰져서 끼우는 부분은 규격에 맞게 되어 있을 뿐입니다. 즉 인터페이스와 프로그램의 내부 로직을 혼동하면 곤란하단 말이지요.
  • MS오피스를 구동하여 보여준 것은 문서를 읽어오고, 새 문서에 그림 파일을 끼워넣은 것 뿐입니다. 오피스는 그야말로 OS의 거의 모든 API를 사용하니까 오피스가 정상적으로 돌면 호환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럼 오피스에서 몇 개 고급 편집 기능도 보여줬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심지어 문자를 입력하거나 기존 문서를 변경하는 작업도 하지 않았기에 더 의구심이 생깁니다.
  • 스타크래프트 실행 시연은 더더욱 가관입니다. 12년 전에 출시된, 그리고 굉장히 최적화가 잘 된 ‘가벼운’ 게임을 실행함에도 불구하고 그 로딩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실시간 게임이 무리라고 판단되었는지 게임 리플레이 영상을 보여주는데, 마우스 포인터가 오버레이되어 보이는 등 혹시 에뮬레이터상에서 돌려서 녹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더욱 짙게 피어납니다.

결국 이번 행사에서 공개된 부분 들을 추려 보자면 ‘티맥스 윈도우’라고 불리는 물건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것이 어떤 기반으로 설계가 되어있는지, 또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공개된 바가 없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WIN32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들을 돌려보는 수준에 그친 것이라면 이는 ReactOS보다도 못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어서 예전부터 회자되어 왔던 WINE 떡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깁니다. ReactOS는 아직까지 알파버전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십 수년간 개발되어온 프로젝트입니다) 각종 윈도우용 어플리케이션을 성공적으로 설치/사용할 수 있습니다. ReactOS의 홈페이지의 스크린샷에서 사용 가능한 프로그램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티맥스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위대한 도전을 했다고 칭찬하고 희망을 걸기에는 너무나 절망적으로 보입니다.

더더욱 찜찜한 라이센스 문제

티맥스 윈도우의 의심스러운 실체뒤에는 더더욱 큰 문제로 번져나갈 수 있는 불씨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이 순수한 ‘인벤트’이냐 하는 점이겠습니다. 이들이 아무리 빠방한 법무팀을 갖추고 있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와 소송으로 정면 대결을 벌일만큼 무모하고 생각없는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WIN32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했을리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공개된 문서들과 API들의 작동 방식을 관찰하여 이를 유사하게 구현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개발 방식은 ReactOS에서 그간 진행해온 방식이고 이러한 연구 결과를 티맥스 측에서 가져다 쓰지 않을만큼 굳은 심지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분투 포럼에 올라온 글은 그 출처와 진위 여부가 분명하지 않아 믿을 수 없기는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리고 티맥스가 이미 유사한 짓거리를 통해 소송에서 패한 전력이 올 들어서만도 두 건이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가 됩니다.
게다가 윈도XP에서 시연을 보인 티맥스 오피스의 경우 설치 폴더에서 GPL 라이센스 안내서가 발견되었고, 티맥스 측에서도 ‘오픈 오피스를 참조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GPL에 의거하여 티맥스는 그들의 오피스 제품군의 소스를 공개해야 할 듯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티맥스 오피스가 선보인 모든 ‘제품(?)’은 분명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거나 적어도 많이 참조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관련하여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오픈소스를 참고했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우리가 직접 개발했습니다에 대한 범위는 단 한차례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공공 기관용으로 판매하려는 건가

우려하던 바대로 결국은 공공 기관용으로 판매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여전히 ‘걸림돌’이 될 HWP 호환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조차 없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아예 자기네 오피스 스위트를 앞세워서 행망용 문서에서 HWP를 축출해 내겠다는 속셈도 깔려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공공 기관에 대한 판매를 메인으로 잡고 진행한다면 GPL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상업용으로 판매하지만 소스는 공개해버리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면 행정용 PC를 구매하거나 소프트웨어를 변경할 때 국산 OS이고 하니 의무적으로 몇 % 비율을 기본적으로 따 놓고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드웨어 호환성 문제는 그 시점에 가서 공공 기관 납품 하드웨어 업체와 협력해서 ‘월화수목금금금’ 전법으로 후다닥 맞춰 놓으면 그만이겠지요.

한국 IT 산업에 해악이 될 수 있을 티맥스 윈도우

저는 개발자는 아니지만 OS를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철학’ 체계를 구축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도, 개발 프레임워크도 모두 철학을 담고 있는 물건인데 이 모든 것을 돌아가게 하는 OS에 철학이 없어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심지어 MS의 Windows도 그것이 마케팅을 위한 슬로건일지언정 ‘information of your finger tips’ 라는 말을 내세웠었습니다. 즉 ‘우리가 도스 시절에 많이 해 먹었던 걸 이제 GUI 기반으로 끌고 가려고하니까 컴퓨터 잘 모르는 너네들도 쉽게 쓰렴’이라는 사상이 그 기반에 깔려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티맥스의 제품에는 그러한 철학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남들이 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소스 코드에 대한 존경이나 존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공개 행사장에 높으신 어르신들 불러다가 뭐하는 짓인지 모를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에서 그저 ‘생색내기 좋아하는’ 가카의 모습만 연상될 뿐, 사용자를 배려하는 어떠한 사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7월 7일이면 세상이 뒤집힐만큼 대단한 것을 보여줄 것 같던 자신감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찌질한 기조연설에서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종적이 묘연하기만 합니다. 이러한 티맥스 윈도우가 어찌되었건 제품으로 출시되어 눈먼 세금으로 행정 기관에 납품된다면 그것은 단지 티맥스의 배만 불릴 뿐이지 한국 IT 산업 발전과 무슨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지식 노동 집약적인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개발자가 쓰러지든, 이혼하고 가정이 파탄나든 그들의 삶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채찍질만 해대는 회사가 성공하는 것이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좋은 영향을 미칠까요? 그보다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분명 더 낮은 단가를 부르짖으며 인간 이하의 대우를 개발자들에게 제공해야지 어떻게든 이들만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인데요. 그리고 오로지 호환성만 부르짖으면서 그 이후에 벌어질 웹 표준 및 보안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책이나 비전도 제시하지 않고 있는데, 그저 호환성만 유지해서 끌고가면 한국IT 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까요? 그저 더욱 높은 레벨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발전해가는 세계 IT 환경에서 한국만 고립된 섬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저 듣보잡 변방 블로거의 기우일 뿐일까요?
아무튼 티맥스는 10월에 베타테스트, 11월에 제품 출시를 그 자리에서 공언했다고 합니다. 3개월이면 베타테스터들이 작성하는 오류 목록을 완성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으로 보이는데, 그 때까지 ‘베타’ 버전을 선보이기 위해 오늘부터 피와 땀을 쥐어 짜 내어야 할 개발자들이 걱정스럽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완성도를 가진 제품이 출시가 되든지 간에 그러한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는데 제가 낸 세금이 소비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도 있습니다. 날씨도 덥고 몸도 좋지 않아 힘들고 짜증나는 요즘인데, 오늘 소식은 하늘을 바라봐도 숨이 턱턱 막힐 듯이 더욱 답답하기만 하네요.
추가 : 최근 티맥스에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후글님이 쓰신 변론에 대한 생각을 엮은 글로 정리한  티스토리 분점 포스트입니다.